따뜻한 세상의 짝꿍 이웃들의 짝꿍
이웃들의 울타리를 넘어, 함께 추억을 쌓다
영주시 박준기 학생
고3이 아니라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 하루의 대부분을 참고서를 보는데 시간을 쏟을 나이다. 사회는 19살 학생들에게 1년간은 세상에 공부 말고는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도 그것이 공부를 하는 과정 안에 있다면 그냥 괜찮다고 넘어가 버린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공부보다 더 값진 일들이 많다. 그 사실을 우리는 마음으로는 알지만, 머리로는 따르기 쉽지 않다. 그것을 쫓지 않으면, 아무도 선뜻 가려하지 않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새로운 길을 두려워한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야 덜 불안하고, 덜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준기 학생은 공부보다 더 값진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과감히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떤 지점에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하나도 알 수 없는 길이지만, 그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믿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의 1년은 집보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고, 부모님의 얼굴보다 담임선생님 얼굴을 더 많이 보는 평범한 고3들의 1년과는 사뭇 다르다. 참고서 속 수 많은 수학 기호들을 그리는 시간 보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회색 시멘트벽과 칠이 벗겨진 대문만 보이는 달동네에 여러 가지 색으로 가득 찬 벽화를 그리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자신을 더 좋은 인생으로 안내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그의 첫걸음은 남들과는 다르지만, 확실히 좋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알 수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해야 하는 것을 위해서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공부는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언제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움은 아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다릴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다른 고3들 에게는 공부가 우선순위이지만, 그에게는 지금 봉사가 가장 해야 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을 고3이 아니라 그냥 열아홉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 부터 자유롭고, 자신이 선택한 길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뛰어든다.
봉사단의 청일점
그가 봉사를 시작한 계기나 이유에는 ‘그냥’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왔다. 그냥이라는 단어는 가벼운 느낌을 우리에게 주지만, 어쩌면 어떤 수많은 이유보다도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건 그 선택의 방해물 역시 없다는 말 아닐까? 박준기 학생의 그냥은 어떤 핑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우연히 하게 된 한 달 정도의 정기 적인 봉사는 그를 같은 반 짝꿍이 아닌 새로운 ‘짝꿍’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짝꿍 봉사단은 영주시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하는 봉사단으로서 청소년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짝꿍봉사단 단원들은 박준기 학생을 제외하고 모두 여학생이다. 그가 봉사단의 유일한 남학생으로 청일점인 셈이다.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청일점은 아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같은 학교인 남자 친구들이 몇 명 같이 활동했었는데, 몇 달 안 가다 그만두고 현재 저만 남게 되었어요. 여학생들밖에 없어서 좀 쑥스러웠는데 함께 고생도 하고 하다 보니 이제는 친해져서 봉사 가는 날이 기다려질 정도예요..” 그는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먼저 그만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런 어려움을 봉사자 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고, 그 우정과 함께 하나의 일을 끝낸다는 보람으로 이겨냈다고 했다. 그리고 당장 몸이 힘든 것보다 봉사를 하는 시간이 너무 좋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다고 했다. 봉사에 대한 그의 마음은 식기보다 오히려 점점 더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사 실 그런 이유를 자신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그저 누군가가 처한 곤란한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고, 그 누군가를 돕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자신 안의 의협심이 이유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라고 했다.
마음의 스펙을 쌓는 중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까지 봉사활동을 할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요즘 들어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봉사도 대학을 가는 데 중요한 실적이 될 수 있다고 말리지는 않으셨어요. 처음에는 봉사를 하러 가겠다는 제가 사회복 지학과나 관련 과로 진학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셨던것 같아요. 하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는 지금은 공부에 조금 더 신경을 쓸 때라고 하셨어요. 맞아 요. 공부에 더 신경 쓸 때라는 것을 저도 분명히 알고 있어요. 오히려 저를 걱정해주시는 분들보다 더 잘 알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싶지는 않아요.” 그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 섞인 말들을 그에게 건넨다. 그러나 정작 그의 부모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우려 섞인 말씀을 한 적은 없으셨다고 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일들 중하나이다. 사실 평생을 가도 그런 사람을 못 만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부모님께서 평생 자신의 편에서 주신 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확신을 준다. 그래서 그는 당장 눈앞의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고 즐거운 일을 쫓아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어른들의 틀에 맞춰 생각해본다면 그는 공부를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고3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수능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마음의 스펙을 쌓고 있는 중이다. 봉사를 통해 가만히 도움이 필요한 곳을 기다리는 자신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냥 길을 가다가 리어카를 밀어드리는 일과같이 사소한 일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신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그것은 어떤 교과서에서도 얻을 수없는 배움이다. 그는 지금 책 속이 아니라 책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