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도화지
하루하루 감사한 일들로
인생이라는 흰 여백을 채우는 시간
울진군 김원길, 길정숙 부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30년 이상의 공직 생활 이후, 마음의 고향 같은 울진에서 열정적인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원길, 길정숙 부부는 둘도 없는 단짝이다. 결혼 후, 단 한 번도 반말을 써본 적이 없다는 이 동갑내기 부부는 서로를 인생의 동반자이자 봉사의 파트너로 생각한다. 심지어 생일마저 이틀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이 천생연분의 부부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같은 방법으로 마무리하겠노라 다짐했다고 한다.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1994년 12월 9일 자로 아내와 함께 장기기증 등록을 했습니다. 서로 열심히 살고 있고, 주변의 도움 덕분에 두 사람 모두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감사하고 고맙게 느껴져 건강한 몸을 기증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아내 역시 흔쾌히 동의 해주었고, 대견스럽게도 당시 중학생이던 아이들도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김원길, 길정숙 부부는 둘 만의 라이프 사이클도 만들었다. 20대까지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며, 60대 초반까지는 끊임없는 자기 성취를 이루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60대 이후는 돌려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말하며 건강만 허용한다면 60~80대까지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말까지 전했다. 이렇듯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부부만의 라이프 사이클을 만들어 놓으니 ‘말하는 대로’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또 지금 그 사이클대로 인생을 실천하게 되었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각자 있을 때의 부족함이 함께 있을 때 채워지기 때문이며, 그들이 각자 있을 때도 빛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인 길정숙 씨는 현재 울진군자원봉사센터의 ‘손소리 수화 봉사’의 회장을 맡아 농아인들을 대상으로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손마사지 봉사인 ‘손사랑회’와 구연동화 봉사단 ‘해피아이’에도 소속되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편 김원길 씨 역시 아내와 함께 수화 봉사를 해오다가 현재는 아코디언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요양원 공연봉사를 하거나 센터에서 주관 하는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밥차 봉사의 경우에는 한여름,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매주 목요일만 되면 울진의 230개 마을 회관을 다니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의 역할은 보통 밥차가 오기 전에 먼저 마을 회관을 찾아 아코디언 공연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입니다. 또한, 울진군자원봉사센터에서 주관하는 지역행사에도 참여해 일손을 돕고 있습니다.”
김원길, 길정숙 부부는 하루의 동선이 거의 비슷하다. 새벽에 눈을 떠 교회에 가는 것부터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들어오는 것까지. 늘 옆에 있기 때문에 서로를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공연을 위해 함께 연습할 때면 호흡까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가끔 아코디언 연주가 끝나고 어르신들이 노래를 시키셔도 연습 한 번 없이 완벽한 하모니를 자랑한다. 이렇듯 부부가 함께 하기 때문에 서로가 지칠 때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함께 나누어 더 큰 행복을 얻기도 한다.
용기와 열정 사이
“봉사를 하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등 심신이 축 처져 있는 분들에게 저희가 가진 조그마한 재능을 나누어 그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 합니다. 말동무를 해드리고 공연을 하고 수화를 지도하 다보면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운이 좋아 많은 재능을 배우게 되었고 그 재능을 그분 들에게 행복으로 돌려드릴 수 있어 봉사하는 시간 내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내 길정숙 씨가 울진에 처음 삶의 터전을 잡았을 때는 수화통역센터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길정숙 씨를 비롯한 몇몇은 영덕에 있는 수화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배우는 열정을 보였다. 수화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이기에 수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따뜻한 생각은 65세라는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지치고 힘든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일념 하나가 그녀의 열정을 불태운 것이다. 그리고 그 불태운 열정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로 돌아갔다.
“봉사는 뭘 가져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24시간 중 아주 작은 시간을 써서 시작만 한다면 그것이 봉사가 되는 것입니다.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스스로가 심리적으로 피폐해집니 다. 하지만 언제나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세상에게 감사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으로까지 발전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삶이 언제나 행복할 것이라고, 반대로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모두가 삶이 언제나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 이다. 하지만 그 방향에 대한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모두가 힘들고 지칠 것을 알기에 마음속으로 자꾸 애쓰며 사는 것이라고, 아내 길정숙 씨가 말했다. 나이만 든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어른의 모습이다. 그래서 김원길, 길정숙 부부는 날마다 넉넉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변화한다는 즐거움
“봉사를 시작해보면 봉사처럼 쉬운 일이 없을 거예요.
크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작은 일부터, 내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부터 실천하다 보면 바로 봉사에 중독되실 겁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기쁨으로 생각하신다면 그첫발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환경은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울진 지역은 지역민들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부지런 하다면 다양한 무료 아카데미 강의를 들을 기회를 만날수 있다. 또한, 강의로 배운 재능을 바로바로 봉사에 접목 하여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참 좋은 점이다. 아내 길정숙 씨의 경우 올해 복지관의 무료 아카데미에서 구연 동화를 배워 ‘해피아이’라는 봉사단을 만들게 되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다’라는 말이었 어요. 봉사를 하고 나면 사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희생 하고 내 것을 모두 나눠 준 것 같지만 사실 내가 받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조금 줬지만, 나에게 크게 돌아오는 것이 바로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아내 길정숙 씨는 봉사를 통해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바로 변화하고 싶은 욕심이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크다는 그녀의 말은 봉사를 통한 마음속 긍정적 변화가 한몫했을 것이다. 항상 작게 주지만 크게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봉사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다음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도 잊게 되고 배움에 대한 열정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원길, 길정숙 부부는 이 빈 부분을 재능으로 채워 나가고 있다. 그리고 봉사로 다시 한 번 재능을 나눈다. 인생은 채움과 비움의 반복이다. 인생이라는 크나큰 도화지에서 김원길, 길정숙 부부는 끊임없는 자기 발전과 나눔의 반복으로 세상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