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시작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집
김천시 김상열 씨
둥글게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시작
“처음에는 막연하게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자원봉사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봉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죠.”
김상열 씨에게 봉사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의미의 일이 아니었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특별한 재주가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웃에게 나누면 된다는 간단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런 사소한 마음이 2002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직접 자원봉사센터를 찾아가 전기설비 기술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집수리 봉사단인 ‘동그라미 봉사단’을 소개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봉사단이 어떤 곳인지조차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소속된 그곳은 건축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을 만들어주는 단체였다. 1998년, 불과 2명이서 시작한 봉사단은 현재 14명의 회원들과 7년 동안 회장직을 맡아온 김상열 씨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대부분 건축업에 종사하며 매달 성금을 모으고 성금은 봉사를 하는데 필요한 기금으로 쓰이고 있다. ‘집’은 절대로 혼자서 지을 수 없기에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자신들의 기술을 쏟아부어 비로소 한 채의 집을 완성한다. 동그라미 봉사단과 김상열 씨는 어려운 이웃들의 집을 수리해줌으로써 그들에게 세상에 아름답고 빛나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고 있다.
머물지 않고, 어디든지
“적성이 잘 맞았던 거죠. 자원봉사센터에서 저를 집수리가 아닌 다른 분야를 소개해 주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봉사를 이어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가 봉사를 처음 시작한 곳은 동그라미 봉사단이 아니었다. 처음 가입한 봉사단은 봉사를 통한 보람보다 봉사에 대한 의문만을 남겨주었다. 매달 모았던 기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그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나름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 그곳은 발로 뛰는 봉사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김상열 씨는 그곳에서 활동이 이웃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가 ‘그냥’하고 싶어 시작했던 봉사는 그런 봉사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를 찾기 위해 자원봉사센터에 가입했고, 동그라미 봉사단을 만나 지금까지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전기 기술을 통한 봉사뿐만아니라, 그의 취미 중 하나인 요리를 통한 급식 봉사 역시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05년 처음으로 가게 된 ‘애훈 장애인복지시설’과 ‘중증 장애인 자립지원센터’에서 돈이 없어 끼니를 대충 때우던 선생님들을 보게 되었고, 그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급식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봉사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다. 그가 이제까지 참여했던 여러 가지 봉사 가운데 해외봉사는 유독 기억에 남을 만한 보람을 안겨주었다. 김상열 씨는 작년에 큰 참사를 겪었던 네팔지진 복구에도 참여했다. 이렇듯 그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 그곳에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도 알아야한다
우리는 봉사를 숨길수록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자신의 도움이 생색으로 비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상열 씨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무엇을 한다’ 이것을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후원하지 않아요. 내 마음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데 누가 마음 쓰고 신경을 쓰겠어요.”
김상열 씨는 처음엔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려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모른다면 아무도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제는 그에게 하나의 원칙처럼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는 SNS를 통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후원자들에게 상세하게 알린다. 나눔의 과정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 루어 이야기’라는 낚시 동호회는 그가 하는 봉사 활동들을 보고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단체 중 하나다. 약 2만 명 정도 되는 전국 각지의 회원들의 도움을 모으고 모아 김천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관심이 김천 구석구석에 닿고 있는 것이다. 후원자들은 김상열 씨의 이름 세 글자를 통해 자신들의 마음이 이웃들에게 고스란히 와 닿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활동은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배려뿐만 아니라, 후원자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필요한 곳! 필요한 만큼!
“저는 절대 돈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아요. 돈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곳에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려고 항상 발품을 팔죠.”
그는 읍, 면, 동사무소를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한 집, 한 집 모두 방문한다. 사전 답사인 셈이다. 그러한 답사는 지원 물품이 중복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는 매년 연말에 진행하는 연탄 기부 행사를 통해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막상 봉사를 하러 간 곳에서 이미 기부받은 연탄이 꽉 차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가지고 있음에도 더 받으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허탈함을 느꼈다. 분명 그 이웃도 어려운 사정에 처한 사람이었지만, 도움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의 답사는 시작되었다.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봉사의 첫 번째 과정을 답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답사 목적이 도움을 주기 위한 사전 조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공감과 교감 역시 답사의 목적이다. 몇 번이고 방문해서 이웃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해야 비로소 그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집수리 봉사를 가게 되면, 먼저 버려야 할 것들과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봉사 현장에 가보면 누가 봐도 버려야하는 것들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그늘이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의 행동을 그저 기벽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감이 수반된다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러 번의 방문을 통해 봉사자는 공감과 교감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은 그들의 도움을 통해 희망을 찾는다. 그들의 도움을 통해 세상에 아직까지 따뜻함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이웃들은 안도한다.
하지만 집을 만들거나 필요한 물품을 기부하는 실질적인 도움만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김상열 씨는 집안에 쌓인 잡동사니를 치워주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깨끗해진 집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이웃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웃들에게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
주고, 받고
“자원봉사는 내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에게 한 개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언젠가는 나에게 득으로 돌아와요. 무조건 주기만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 희생이죠.”
봉사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다. 그는 힘들 때 꼭 봉사를 나간다. 장애인들의 맑은 눈이나, 노인들을 보면서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는지를 잊는다. 자신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걱정이 있던 자리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그에게 힘을 준다. 그래서 김상열 씨는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매 순간 노력한다. 그에게 봉사는 힘들지 않고 즐거운 일이다. 이러한 즐거운 일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육체만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혼자서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계신 할머니를 도와드리거나, 넘어진 장애인을 일으켜주는 사소한 도움조차도 봉사가 될 수 있다. 특별한 재주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세상에 많지만 봉사는 물론 그런 분야가 아니다. 재주가 있으면 좋지만, 봉사를 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봉사는 머리에서 오면 안 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머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그의 주위에는 단순히 보기가 좋다는 이유로 봉사를 따라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끝까지 남는 것은 아니다. 머리만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머리를 따라가다 보면 핑계가 많아진다. 더워서, 추워서, 몸이 안 좋아서 등의 핑계가 생기고, 그 핑계는 이웃들에게 진심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마음으로 손을 먼저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