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다
영양군 장명구 씨
특별한 인연
치매예방과 청소년 프로그램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명구 씨는 강사활동 틈틈이 결손가정 아이들 공부방인 ‘시나브로’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 실패를 겪고 삶이 힘들어지게 되었는데, 그때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는 두 번의 사업실패를 겪으면서 얻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주변 이웃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 이 두 가지는 그를 자원봉사센터로 이끌었다. 그때부터 간간이 봉사를 이어왔지만, 주로 장애우들과 독거노인들을 상대로 한 봉사였다. 그가 결손 가정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년전이었다. 자원봉사센터에 자신의 생각보다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다보니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시나브로’로 이어지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나브로’는 다문화·결손가정의 아이들 13명과 장명구 씨가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매주 월요일과 일요일에 모여 기타, 피아노, 인성교육이나 여행과 같은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작은 관심으로 시작한 시나브로는 이제 장명구 씨와 13명의 아이들을 이어주는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서로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결심에서 행동으로
“많은 자원봉사 중에 제가 아이들과 관련된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이유는 서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런 아이들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장명구 씨가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장애우 3명, 독거노인 7명, 결손가정 아이들 28명을 상대로 혼자 봉사활동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체력이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점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쳐갔다. 그러다 보니 처음의 결심이 흐려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혼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람에게 더 확실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장애우와 독거노인들에 비해 제도적 혜택을 못 받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시나브로 공부방을 만들게 되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곳은 되지 못해도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나브로는 시작했다. 서류상으로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아이들이나 탈북자 가정의 아이들은 분명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항상 외면받아왔다. 그런 상황들을 자신이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이고 싶은 그의 따뜻한 마음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아직도 많다. 결심은 쉬웠지만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서로에게 서로가
“도시에서 결손가정 아이들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규제조건이 까다로워지다 보니 정말 필요한 곳은 정부 지원금을 전혀 받을수가 없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공부방을 운영 중인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커요.”
최근 아동센터 규정이 까다로워져 장명구 씨가 운영하는 ‘시나브로’는 단체등록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시에 비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영양군이나 농어촌에서는 그 규정에 맞춰 시설을 갖추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정부 지원금을 전혀 받을 수도 없어 경제적 제약이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호할 장소를 구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아이들이 드나들다 보니 여러 가지 사고들이 일어나는데 그 사고들을 대처할 마땅한 인력도 지원도 없다 보니 많은 곳에서 장명구 씨와 아이들을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저곳 눈치를 보며 장소를 옮겨 다니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그가 ‘시나브로’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이유는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에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은 표정이 너무 어두워요. 그리고 바로잡아줄 어른이 곁에 없다 보니,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엇나가기가 쉬워요. 학교 담장을 넘거나 경찰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같이 공부하고 음악을 배우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시 웃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저한테 계속해서 힘을 주죠.”
세상 어디에도 마음 놓고 쉴 곳이 없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나쁜 길로 빠져들기 쉽다. 그런 아이들을 곁에서 바른길로 인도해줄 어른이 필요한데 보통은 그 역할을 부모들이 하지만, 결손가정 아이들에게는 그런 역할을 맡아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장명구 씨는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할을 자진해서 맡아오고 있다. 부모 대신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부모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대신하고 싶은 그의 마음은 항상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나 있던 아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적인 혜택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산골에서 기타나 피아노 수업을 통해 점차 밝아지는 아이들의 얼굴은 장명구 씨에게 항상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을 준다. 아이들은 장명구 씨를 통해 아름다운 마음을 배우고, 장명구 씨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에 힘을 얻는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서로 아름다운 마음들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서 모두에게
“15년째 봉사를 해오고 있는데 봉사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하지만 내 작은 힘을 보태서 누군가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이 봉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에요. 그리고 봉사를 통해 저 자신도 많이 변했고요.”
그는 봉사를 시작하기 전 자신과 시작하고 난 뒤의 자신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봉사를 하기 전에는 자신의 성공에 대한 자만에 가득 차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계속해서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알게 되고, 겸손한 삶의 방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삶을 배려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명구씨의 가족들도 그의 봉사활동을 통해 결손가정 아이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대구에서 미용봉사를 하고 있는 누나와 동생이 매달 보내주는 작은 관심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주는 따뜻한 간식으로 전달되고 있다. 자신의 변화가 점점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아이들은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신들이 받은 따뜻한 마음을 다른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봉사는 혀끝이 아니라 손끝으로 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주변에 마음을 못 열어요. 마음의 문을 열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봉사는 시작해요. 그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관심이거든요.”
우리는 항상 눈에 보이는 것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봉사는 더욱 더 우리 마음에서 멀어져간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관심이다. 그리고 관심은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옮겨진다. 혼자 사는 노인분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사소한 수다를 나눈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이웃들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장명구 씨가 시나브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실천도 이처럼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놀고, 같이 배우고, 옆에서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아이들의 삶에 큰 변화를 낳는다. 그래서 봉사는 혀끝이 아니라 손끝으로 해야 한다. 혀끝은 마음에 상처를 낼 수도 있지만, 손은 상대방을 부드럽게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