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다
평범한 일상에서 운명 같은 사건을 만나다
상주시 홍지혜 씨
모든 시작은 아름답다
“저희 남편은 초등학교 3학년, 고작 10살이라는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양어머니, 양아버지의 손길을 통해 자라났어요. 가족이라고는 형, 누나밖에 없었던 남편은 저와 결혼한 후에도 그 손길을 잊지 않고 명절이면 언제나 양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장기에 공부에 큰 취미가 없었고, 부모님도 공부보다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는 말씀을 더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거지가 집을 찾아오면 저희 밥은 챙겨주지 않아도 거지들은 밥상에 밥을 차려 대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장해서 그런지 저 또한 자연스럽게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녀의 봉사는 이처럼 자연스럽고도 평범하다. 자신과 남편의 자라온 환경이 그녀를 봉사의 길로 이끌었고 마침내 ‘풍선아트’라는 자신의 재능을 나누게 된 것이다. 그녀가 풍선아트를 배운지는 벌써 10년째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만 시간을 쏟던 그녀는 무작정 뭔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바로 ‘풍선아트’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운명처럼 그녀의 삶을 바꾼 것이다. 이런 그녀의 열정은 그녀의 재능을 성장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풍선아트 강사에게 배우자는 일념으로 서울에서 상주를 오가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이러한 고생의 결과는 자격증이라는 공인 ‘인증’에서 그치지 않았고 봉사를 통해 주변 사람의 ‘인정’을 받는 큰 자산이 되었다.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봉사는 할 때마다 행복해요.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가족이 다 같이 사람들을 위해 풍선을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이죠. 사실 몇 번을 시도했었으나 남편이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늘 바빠 기회가 잘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도 저희 아이들도 모두 풍선아트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봉사를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봉사를 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하더군요. 그때 ‘우리 딸이다, 아들이다, 남편이다’ 라고 말할 때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녀의 봉사는 가족과 함께이기에 더욱 즐겁고 행복하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 사실 세상에는 장애 아동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녀의 딸은 언제나 장애 아동들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으며, 오히려 먼저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민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봉사를 하는 보람을 배로 느낀다.
사실 봉사를 할 때 어려운 점이 없을 수는 없다. 그녀의 몸이 아플 때도 누군가와 한 약속이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봉사를 향하면 서글픈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녀가 가장 힘든 점은 아이가 아픈 순간이다.
“한번은 학교에 급식지원을 못 받는 아이들을 위해 대형마트에서 홍보활동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풍선을 만들어주며 한참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급한 연락이 오더라고요.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전화가 말이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서 웃으며 끊었는데 다시 한 번 전화벨이 울리니 그때부터 마음이 쿵 내려 앉았습니다. 그래도 그때 당시에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해야 했기에 아들을 큰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녀의 아들은 생명에 커다란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리가 부러지고 혈관이 줄어들면서 4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때에도 그녀는 아이를 병원에서 등하교시키고 조용한 밤에는 학부모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그 당시 그녀는 봉사를 하면서 가장 큰 회의감과 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내 아들도 지키지 못하는 내가 봉사를 하러 나가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 친정어머니의 한 마디로 고통을 이겨냈다.
“‘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네가 꾸준히 봉사를 했기 때문에 네 아들이 무사히 살아있을 수 있는 거야’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봉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든 길이 가장 단단하다
누구에게나 행복의 기준이 있으며, 그 기준은 다르게 세워져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 살아온 환경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녀에게 행복이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도,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진 것이 부족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들을 베푸는 일뿐이다. 그녀는 그런 행복들을 자녀들에게 직접 가르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스스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기대한다.
“항상 봉사를 다녀오면 아이들에게 오늘 제가 했던 봉사활동에 관해 이야기해요. ‘엄마는 오늘 이런 봉사를 했고 다음번에는 너희들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이런 말들을 말이죠.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인다면 저희 아이들이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고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녀는 그다지 모범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도 아니었을뿐더러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효녀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의 권유로 조금도 관심 없던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도 가게 되었고, 봉사 활동을 통해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도 그녀는 남녀노소, 장애인과 비장애인 관계없이 모두와 소통할 방법을 배우기 위해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하곤 합니다. ‘너 정말 성공했다’라고요. 사실 성공이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나누고 베푸니까 주변의 사람들도 많아지고, 또 저를 알아주는 분들도 많아져요. 이런 게 바로 성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행복하다고 해서 성공했다거나, 성공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행복과 성공은 방향이 같다.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하는 마음. 자신의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그녀야말로 친구들이 말하는 진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꿈, 소박한 진심
‘봉사’라는 단어의 무게는 무겁다.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는 봉사의 정의는 봉사에 첫발을 내딛으려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두려운 마음마저 갖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봉사는 정의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행복 하나를 다른 사람과 나눠 가지려는 그 마음이 바로 봉사다.
“아는 후배들이나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1년을 꼬박 일해도 쉬는 날이 없습니다. 하루를 쉬면 하루를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은 절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하루를 쉬면 또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죠.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못 입는 옷을 고아원에 기부한다거나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그것이 진정 봉사고 내일이 더 행복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녀는 봉사를 시작하며 남편과 약속 하나를 했다. 나이가 많이 들더라도 풍선 불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소박한 소원이다. 봉사는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가 손을 내밀 때 용기가 필요한 만큼 상대방도 내민 손을 잡기 전에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녀에게 익숙해져 버린 봉사.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의 기억은 언젠가 가슴이 벅찰 정도의 특별한 희망으로 자라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