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름살을 지워가다
몸은 늙지만, 나눔의 마음은 늙지 않는다
안동시 이상주 씨
노(no)노(老)클럽
사람들은 자신을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는 이상주 씨를 보고 모두 한 번쯤은 놀란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곧 오랜 시간동안 봉사와 함께한 그의 인생에 대한 감탄으로 바뀐다. 어쩌면 도움을 주기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당연한 나이가 된 그는 하루를 오히려 이웃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시간으로 채워왔다.
그는 1968년부터 새마을 운동 지도자를 시작으로 시내 환경정리, 농촌 일손 돕기 등 여러 가지 봉사를 해왔다. “여러 가지 봉사활동들을 정신없이 해내다 보니 어느새 생활 속에 봉사라는 습관이 스며들고 있었어요.”라고 한 그의 말처럼, 이제 봉사는 그의 일상 속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거의 평생을 봉사와 함께 보내온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나이는 들었지 만, 아직 몸은 누군가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을 정도로 약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 역시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보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사회에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식들은 이제 다 커서 모두 자기 역할들을 훌륭히 해내고 있어요. 마음 쓸 일들이 확실히 줄어들었죠. 그리고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삶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봉사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안동시자원봉사센터를 통해 23명의 백발이 다 되어가는 회원들과 함께 200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은 마을 환경 정화 봉사부터, 마을의 노후시설 수리기부, 그리고 주머니의 쌈짓돈을 모으고 모아 장학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경제적 활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모은 장학금은 다른 어떤 장학금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앞서 인생을 살아봤던 그들의 배려가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희망이 되어 전달된 것이다. 이상주 씨는 자신이 늙은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그의 생각이 꾸준한 봉사활동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는 늙지 않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핑계를 극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린다. 이상주 씨와 회원들은 그 핑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늙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
“나이가 들면서 옛날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가끔 상황을 힘들게 만들기도 해요. 점점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죠. 하지만 그 어려움을 계속해서 극복해나가야 봉사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매일을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84세의 나이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나이였다. 덥거나 추운 날씨와 같은 환경 변화에 젊었을 적만큼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봉사를 할 때 날씨를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특히 ‘더운 날씨’를 쉽게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무더운 날씨에 버스승강장 환경미화 작업과 같은 활동들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상주 씨와 노노클럽 회원들은 힘들다는 불평불만 없이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누가 알아주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수고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쾌적한 환경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거라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신체적 어려움을 이겨냈다. 젊은 사람들 보다는 부딪히는 어려움의 수가 월등하게 많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 번번이 좌절했다면, 그의 봉사활동은 지금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끝났을 것이다.
“봉사는 일방적으로 가서 해주는 일이 아니라, 자원봉사자와 이웃 모두가 도움을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에요. 일방적인 희생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무언가는 변화하죠. 마음이라던가, 아니면 삶의 방식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봉사는 변화라고 생각해요.”라고 그는 자원봉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봉사는 대가가 없는 활동이다. 그래서 자칫 봉사를 하러 온 봉사자들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일방적인 희생은 봉사활동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주어야만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대가 없이 베푸는 무언가가 더 큰 무언가가 되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 돌아오는 무언가는 보람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이나 기쁨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세상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자원봉사는 도움을 받는 사람과 봉사자들 모두가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는 꼭 따라온다. 이상주 씨는 자신 또한 봉사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겪은 사람이라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웃을 보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을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동등한 관계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기분 좋은 변화만이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봉사활동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은 사람을 기분 좋게 그리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조금씩 나누어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봉사는 양쪽 모두에게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봉사는 대가가 없는 활동이지만, 가끔 봉사자들은 그 대가를 받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대가는 ‘인정’과 ‘환대’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주 씨의 오랜 나눔의 습관을 지켜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치매노인센터 봉사를 할 때, 환자들이 찾아와 너무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아주거나, 봉사를 하러간 곳에서 환영하는 의미의 큰 플랜카드가 걸릴 때 그는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 플랜카드들이 자신들의 활동이 그만큼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고, 어려운 이웃들의 마음에 다가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 크든 작든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마 자원봉사자들 모두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상주 씨에게도 그 사실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 덕분에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회원들이 스스로 참여해주고, 주변에서 제가 한 활동들을 인정해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며 그는 도움이 필요한 곳 어디든지 자신을 불러만 준다면 가기 때문에 자신을 심부름꾼이라고 말했다. 88세인 부회장도 열심히 하기 때문에 이상주 씨는 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이 허용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다.
“사람들은 자원봉사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다른 봉사자분들도 말씀하시겠지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쉬운 일이죠.” 그는 자원봉사 활동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작은 마음만 있다면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봉사는 그저 시간이 나서 가끔, 또 마음이 움직여서 가끔,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일부를 다른 이들을 위해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